네 아우를 어디에 두었느냐? (4장 묵상)
성경은 이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셋의 계보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인의 계보를 비교하며 그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차이는 예배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는 사람을 심판하실 기준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시면서 '믿음 없는 제사'로 규정 하셨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가인의 제사가 훨씬 근사해보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세월이 지난 후에' 아담이 드린 제사를 드리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승대신 땅의 소산으로 정성껏 드려 믿음이 필요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제사란 제물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내보이는 것인데 자기가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도 받으셔야 할 만큼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스스로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벗어나 죄의 영향 아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하나님 앞에서 위치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위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문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가인을 이겨 동생을 마침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마치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는냐’ 하시며 찾아오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영혼의 위치를 잃어버린 아담을 바른 자리에 두시는 것을 구속이라고 하듯이 형제를 바른 위치에 두는 것도 영생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동생을 죽였느냐?’ 묻지 않으시고 형제를 둔 위치를 물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범죄하여 자기 혼자 살아남으려다보니 아내와 형제는 이용의 대상과 경쟁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으뜸 되는 계명도 하나님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건 처음에 아담이 하와에게 고백한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방문할 광저우교회가 주님과 교회의 기도로 복을 얻도록 기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