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이 서기 위해서 사람의 뜻은 꺾여야 합니다(창 40장 묵상)
원래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하나였습니다. 이 완전한 순종의 상태를 안식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여 하나님처럼 되려 했고, 자신들이 최종 목적이 되려고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실현하려는 인간들이 추구는 그 어떤 것들로도 결코 만족과 안식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족과 안식은 하나님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도모도 헛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탐욕에 근거한 사람의 뜻과 야망을 꺾으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이끄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삶 속에는 항상 고난이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고난은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의 목적은 연단을 위한 것이며, 연단은 부족한 것이 없는 완성을 위한 필연적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기대는 무너져야만 했습니다.
요셉이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을때 거기에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들이 꾼 꿈을 요셉이 해석해주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만에 복직을 하였고 떡 맡은 관원장은 목이 달려 죽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고 선처해줄 것을 약속 받았지만 그 술 맡은 관원장이 그만 잊어버리고 맙니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그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과 달랐습니다.
요셉은 그 후로도 이 년간을 묵묵히 감옥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람이 도모한 계획과 기대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길은 사람들의 꿈대로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말씀하신 바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디어 보이고 잠시 악인이 득세하는 듯해도 이미 하늘에서 이룬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성도를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벗어나고 인정받아 총리가 된 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을 위해 자기 백성을 준비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영달 자체가 인생의 목적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