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상수리나무 알란바굿(35장 묵상)
리브가는 이삭에게 시집올 때 유모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24:59) 그때는 이름 없는 종이었지만 본문은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임을 밝혀줍니다(8) 마침내 야곱이 벧엘로 돌아왔을때 그녀가 죽어 벧엘에 묻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녀를 묻은 장소를 ‘알란바굿’ 곧 ‘통곡의 상수리 나무’라고 부른 사실이 의아했습니다. 나그네 길에서 설움이 많았겠구나 생각을 하다가 야곱이 그토록 통곡한 지점이 인식되자 순간 목이 메였습니다.
야곱이 리브가를 떠나 혈혈단신 밧단아람에 갔을 때 유일하게 어미 리브가를 대신해서 위로하고 벧엘로 되돌아오기까지 동행하던 사람이 드보라였습니다. 주변에 대적뿐이었던 야곱에게 유일한 의지였던 사람을 묻자 설움이 복받친 것입니다.
야곱은 수많은 질곡을 겪으면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쫒기듯 나오면서 모든 우상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는데 마지막으로 그녀까지 묻게 되자 통곡한 것입니다. 하나님외에 의지하던 모든 것을 묻어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리브가의 죽음과 무덤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는데 유독 유모 드보라는 이름을 되찾고 무덤까지 이름을 붙힌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녀는 벧엘에서 시작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어 벧엘로 돌아오도록 도왔기 때문입니다(27:45).
야곱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을 이겨 하나님과 언약한 지점으로 돌이킨 서사시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집으로 불린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나타나신 곳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다시 보여 질 것이라고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 같이 우리도 결국 하나님의 집으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벧엘로 돌아와서 ‘엘벧엘’의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비로소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위한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이 듣고자 하신 고백이었습니다. '알란바굿' 이후 야곱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불려집니다.
인생을 성취와 만족을 위해 살지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하기 위해 부르신 ‘벧엘’로 고백하고,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부를 수 있는 ‘엘벧엘’은 언제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