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수준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34장 묵상)
‘엘엘로헤 이스라엘’은 ‘나의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새 이름을 사용했어도 자기가 먼저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앞세우는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 안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고백에 책임을 지도록 인도해가셨습니다. 어찌 되었든 고백을 먼저하고 나면 하나님은 그것을 서원으로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정착한지 얼마 안되서 딸 디나는 ‘그 땅의 딸들’을 보러 세겜으로 나갔습니다. 이 불안한 사귐은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이는 사실 야곱의 불완전한 순종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야곱이 순례를 중도에 멈추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환란을 허락하셔서 야곱으로 하여금 약속을 주목하도록 일깨우신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은 사람을 하나님께 바로잡게 합니다.
곧 그곳 추장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욕보여 이스라엘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한 후 통혼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섞인다면 거룩한 계보는 오염되고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자 시므온과 레위는 속임수로 세겜 백성을 도륙하고 디나를 되찾아왔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야곱은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자기 집이 멸망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했던 야곱은 이제는 주변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놀라운 회심과 믿음의 고백을 한 야곱이었지만 온전한 순종에 이르지 못하자 다시금 이렇게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는 자식들이 이스라엘의 이름에 악취를 내었다고 화를 내었지만 사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한 것과 부르신 목적을 잊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악취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디나의 문제와 시므온과 레위의 악행은 야곱을 하나님과 약속한 지점까지 이끌고 계셨습니다. 신앙의 목적지와 수준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데 까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