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삭의 신부를 얻음(24장 묵상)
아브라함은 신실한 늙은 종을 불러 이삭을 위해 아내를 멀리 자신의 고향에 보내 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과 섭리에 따라 리브가를 만나 이삭에게로 데리고 오는 장면입니다.
22장에서는 아들이 바쳐졌고 23장에서는 사라가 죽었으며, 24장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의 신부를 구해옵니다. 일련의 과정은 이 땅에 교회를 존재하게 된 순서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곧 아들의 죽음을 통한 구속과 구속자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제쳐짐과 성령의 강림으로 신부된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이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성령으로 상징되며 신부된 교회를 찾아내었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했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베필이 될 자격으로 능동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염두에 두었는데 리브가가 이 일을 즉시 행하였습니다. 세상은 손해를 보지 않고 약삭 빨라야 하는데 리브가는 달랐습니다.
세상의 원리는 자기에게 몰두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자기를 넘어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의 덕목은 자기를 넘어 사람을 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의대로 행하지 않고 보내신 분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또 마침내 신부를 구하자 그녀에게 신랑의 선물을 주었고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신부는 아직 실체를 보지 못했지만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요16:13)
종은 아버지와 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독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광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신부를 격려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에 집착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리이다"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신랑의 부름에 즉각 응했습니다. 또 그녀는 이삭을 멀리서 보고 탄 것에서 내려 스스로 면박을 취하여 신부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우리도 지금 이 위치에서 예배와 섬김을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