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요구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22장 묵상)
아브라함의 신앙은 분리를 통해 순결해져갔습니다. 본토와 아비의 집, 롯으로부터 떠나고 하갈과 이스마엘까지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가 노년에 얻어 소망과 기쁨이 되었던 이삭까지 제물로 드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되다는 사실을 행위로 증명해야 하는 하나님의 시험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는 구약의 갈보리 사건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삭을 이렇게 드리고 나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 성도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세에 얻은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은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망설임 없이 이 일을 수행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능력과 이삭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히11:17).
그리고 이 사건은 아브라함을 통해 부활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구속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을, 죽기까지 순종한 이삭은 성자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결박당한 이삭 대신 숫양을 준비하셔서 그의 생명을 대신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고(롬8:32) 또한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심을 보여줍니다(고전5:7)
구원은 일반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신 사역이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인정하실 사람을 찾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리야 산에 후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부른것은 예배는 정과 욕심을 부인하고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지만 그때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려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