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이스마엘은 쫒겨나야 합니다(21장 묵상)
마침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란 의미로 사라가 믿지 못해 웃은 것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부른 이름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젖을 뗄 때가 되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고 기록합니다(갈4:29) 이스마엘은 육신의 의지로 낳은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 하나님께 복종치도 않고 원수가 되는 옛 본성입니다.
성경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육신을 좇아 났고 이삭은 약속과 영을 좇아난 후손이라고 증거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육신의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삭이 나중에 태어났지만 적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도 곁에 두고 싶어했듯이 이와같이 본성은 육신과 타협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줄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내어쫒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옛 본성과 영합하려 들면 갈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은 육신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죽었다고 간주하는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결코 달래거나 얼러서 동행 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십자가로 넘기지 않으면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충돌로 묘사했습니다. 하갈은 율법과 옛언약의 상징이며 지상의 예루살렘과 동일시되었고 사라는 새언약의 상징으로 천상의 예루살렘과 동일시되었습니다(갈4장).
이스마엘은 종의 자식이며 육신의 뜻으로 났고 이삭은 사래에게서 상속자로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으로 났습니다. 이삭이 어렸을 때 젖을 먹을 때에는 이스마엘과 함께 율법아래 있었던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젖을 떼자 육신이 핍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는 구원을 받았어도 먼저 마음의 주인행세를 하던 육신이 성령을 따라 살려는 새사람을 대적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옛 언약은 정죄하고 죽이는 율법이고 새 언약은 은혜로 덮고 살립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속성상 부딪히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정과 욕심으로 붙들고 있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