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도권을 하나님이 쥐셔야 합니다 (16장 묵상)
아브람은 놀라운 승리와 언약의 재확증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자 하나님보다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그만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이는 약속을 이루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편에서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알량한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지 않는다면 어제의 승리와 놀라운 확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사래는 하나님이 생산을 허락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빨리 이루고자 하는 꾀에 설득된 생각입니다.
원래 약속이 즉시 이루어지면 거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약속은 기다림이 필요하며 성취가 되기까지 약속한 분을 주목하고 온전히 신뢰해야 하는 과정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그래서 구원을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라는 자기가 자식을 낳지 못한 핸디캡 때문에 아브람에게 하갈과 동침하라고 설득했습니다.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단의 공격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옵니다.
아브람도 이 제안을 따른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열망이 앞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신의 지혜는 눈앞에 결과를 얻었지만 전혀 의도치 않던 상황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벗어낫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들나귀와 같이 통제가 안되는 육신을 의미합니다. 이는 불신앙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힘을 의지한 결과였습니다.
갈4장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율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힘을 근거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보려는 사람의 노력을 말합니다. 대체로 신앙의 초기에 자주 넘어지는 율법주의의 함정입니다.
믿음의 다른 말을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도리어 자기 꾀와 시도를 그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뚜렷해지고 조바심하는 옛사람은 소멸되기 때문입니다...